
“아직도 무대에 오르면 가슴이 뜁니다.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제 노래를 기억해준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 ‘순이 생각’, ‘잊지는 말아야지’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백영규.
1978년 혼성듀오 ‘물레방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그는 어느덧 반세기에 가까운 음악 인생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은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도 무대에 오르고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백영규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추억의 가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가수’다.
■ “슬픈 계절에 만나요…제 음악 인생의 특별한 한 페이지”
기자: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지금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백영규 씨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입니까?
백영규: “단순한 히트곡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기억이기도 하고, 많은 분들과 음악을 통해 처음 깊게 만날 수 있게 해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억하고 불러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백영규를 대표하는 곡이자 당시 청춘들의 감성을 대변했던 노래로 자리 잡았다.
한때 라디오와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는 이제 부모 세대의 추억을 넘어 새로운 세대에게도 과거를 이해하는 음악으로 남아 있다.
■ “음악은 직업이 아니라 이제 제 삶입니다”
기자: 오랜 세월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백영규: “저에게 음악은 직업이면서 삶입니다. 음악을 하지 않는 제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젊었을 때는 좋은 노래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 노래를 들으면서 누군가 위로를 받고,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의 음악이 사랑과 이별, 청춘을 노래했다면 이제 그의 음악에는 인생의 깊이가 더해졌다.
그래서 백영규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떠올린다.
■ “나이는 숫자…마음만큼은 여전히 청춘”
기자: ‘영원한 젊은 오빠’라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본인은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영규: “나이는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죠.
무대에 올라 노래할 때만큼은 제가 처음 가수가 됐을 때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도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지만 음악을 대하는 열정만큼은 여전히 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고 공연을 이어가며 지금도 대중과 직접 만나고 있다.
‘그때 그 가수’가 아니라 ‘지금도 노래하는 가수’라는 점이 백영규 음악 인생의 가장 큰 특징이다.

환경정화로 땀을 흘리고 있는 가수 백영규 (보라색 옷)
■ 마이크 대신 집게…환경정화 활동에도 앞장
백영규의 활동은 무대 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환경정화 활동에도 참여하며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던 가수가 환경정화 현장에서는 집게를 들고 시민들과 함께 주변을 살피며 쓰레기를 줍는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작은 실천 역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기자: 음악 활동뿐 아니라 환경정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백영규: “노래를 하는 이유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깨끗하고 쾌적해야 사람들의 마음도 더 밝아질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 하나를 줍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한 사람이 시작하고 두 사람이 함께하고 많은 사람이 동참한다면 작은 행동이 큰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환경정화는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일이 아니다.
지역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는 또 하나의 활동이다.
무대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환경정화 현장에서는 집게를 든다.
이러한 모습은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백영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가장 행복한 순간은 관객이 함께 노래할 때”
기자: 오랜 음악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백영규:“수많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장 행복한 순간은 관객들이 제 노래를 함께 따라 불러주실 때입니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면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해오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수에게 관객의 박수와 떼창만큼 큰 선물은 없다.
특히 수십 년 전 발표한 노래를 지금도 관객들이 기억하고 따라 부를 때 느끼는 감동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기자: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음악적 꿈이 있다면요?
백영규: “거창한 꿈보다는 오래 노래하고 싶습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세대와 세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이 좋아했던 노래를 자녀가 듣고, 자녀가 또 새로운 음악을 부모님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음악이 가진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꿈꾸는 음악은 세대를 가르는 음악이 아니라 세대를 연결하는 음악이다.
추억을 가진 세대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백영규가 생각하는 음악의 힘이다.
■ 세월은 흘러도 노래는 남는다
1978년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백영규.
수많은 유행이 지나갔고 음악을 듣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LP와 카세트테이프를 지나 CD와 음원 플랫폼의 시대가 됐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인천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오랜 시간 인천을 기반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지역의 음악문화 발전과 포크음악의 저변 확대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그가 꿈꾸는 ‘포크 음악도시 인천’ 역시 음악을 통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고자 하는 그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제 그의 활동에는 음악뿐 아니라 환경과 지역사회가 함께하고 있다.
노래로 마음을 위로하고, 환경정화로 삶의 공간을 깨끗하게 만든다.
화려한 스타의 모습보다 시민들과 함께 땀 흘리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가수의 또 다른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를 부르던 청년은 어느덧 인생의 수많은 계절을 지나왔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청춘이다.
세월은 그의 머리 위로 흘렀지만, 가슴속 음악은 아직도 젊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노래한다.
“영원한 젊은 오빠, 백영규.”
그리고 그의 노래는 오늘도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