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시(詩)그널'을 켭니다. 행간에 담긴 마음의 떨림 속에서 바쁜 일상에 잊히기 쉬운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권온에어가 전하는 詩 한 편이 당신의 오늘에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반가움 대신 마주한 엉뚱한 주객전도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온전히 서 있어야 할 자리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당연하게 내 것이라 여겼던 공간이나 지위가 어느새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흔히 당황하거나 서운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것이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고향 집이라면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여기, 그 황당하고 서운할 법한 주객전도의 상황조차 아주 귀엽고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시킨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마주하는 엉뚱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주인
네가 오기 전
분명
우리 집이었어
그런데
내가 친정 갈 때마다
진돗개가
자기 집이라고 짖어댄다
그럼
이제
넌 박힌 돌
나는 굴러온 돌?
_류시연
친정집 마당에 들어서는 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반기기는커녕, 낯선 사람이라도 온 양 맹렬하게 짖어대는 진돗개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분명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인데, 뒤늦게 들어온 녀석이 떡하니 안방마님 행세를 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화가 날 법도 한 이 기막힌 상황에서 시인은 녀석을 나무라는 대신, "넌 박힌 돌, 나는 굴러온 돌?"이라며 기꺼이 굴러온 돌의 자리를 자처합니다. 내 자리를 빼앗겼다는 서운함을 내려놓고, 녀석의 맹렬한 텃세를 귀엽게 인정해 주는 넉넉한 유머가 마음을 참 따뜻하게 만듭니다.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친 제복을 입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저는 이 작은 자리 내어주기가 얼마나 큰 용기인지 자주 깨닫곤 했습니다. 인권과 존엄이라는 가치도 결국은 내가 가진 기득권과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리의 경계를 조금 허물고,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가 내 공간에 들어왔을 때, 짖어대는 진돗개처럼 날을 세우며 밀어내기보다 유쾌하게 한 발 물러서 주는 여유야말로 우리 사회를 다정하게 만드는 진짜 힘일 것입니다.
때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이 서로 부대끼며 더 둥글고 예쁜 풍경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 내 자리를 침범한 것 같아 미간이 찌푸려진다면 류시연 시인의 유쾌한 질문을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는 그 따뜻한 넉넉함이 당신의 하루를 더 환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시인 소개

류시연 시인은 바쁘고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주변의 작은 풍경들을 놓치지 않고 다정한 눈길로 보듬어 안는 따뜻한 관찰자입니다. 늦깎이로 문학의 길에 들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며 배움의 열정을 태웠고, 문경 아자개장터 디카시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그 서정적인 감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동인시집 '그대 그리움엔 무엇이 담겼을까'와 '오늘도 아하!', '내일도 아하!' 등을 통해 일상의 숨은 웃음과 감동을 길어 올리는 그의 문학적 여정은, 읽는 이의 마음에 유쾌한 위로와 둥근 여유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