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란 육상, 수영 등에서 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하는 사람이다. 특히 특정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페이스메이커는 경기 초반에 오버페이스로 공기저항을 대신 받아주거나 다른 팀 선수들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린다. 뒤 선수는 체력을 비축하며 막판 스퍼트로 좋은 기록을 달성한다. 정치권에서 전당대회나 후보 선출 시 화제성을 높이고 주목을 끌어내기 위해 등장하는 경쟁 후보를 일컫기도 한다.
<에듀윌 시사상식>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당시 큰아들은 지금처럼 운동을 좋아했다. 또래와 비교하면 체격도 좋고 체력도 좋다. 운동을 곧잘 한다. 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면 아들은 운동 종목만 신청하였다. 방과후 축구나 티볼이다. 일주일에 주중 수영 2회, 태권도 3회, 그리고 토요일 오후는 리틀야구클럽(취미반)을 오가는 아들의 체력은 단단해 보였다.
초등 4학년인 아들에게 권해본다.
“아들, 10킬로 달리기 아빠 신청할 건데 같이 달려볼래?” 아들은 두말할 것 없이 같이 달리기를 신청해 달란다.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아들, 10킬로 달리기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던 사람들이라도 짧은 거리가 아닌 거 알지? 대회까지 한 달이 남았으니 운동 잘 준비해”
대회 당일 한강 여의도공원 행사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참가하는 대회는 “1단체 1명 소외계층돕기 행복한가게 마라톤대회”로 여타 대회와는 달리 참가기념품 대신 그 비용으로 다른 이를 돕는 후원금을 내는 대회이다. 아이에게 나눔의 방법의 다양함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체화시켜 주리라는 맘에서 고른 대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리라. 아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굳이 아이에게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행사장은 많은 마라토너로 붐비고 있었고 우리도 가볍게 몸을 풀고 출발선에 섰다.
“아빠, 1등 하면 상품 줘요? 우리 1등으로 달려요”
“아들, 마라톤은 말이야. 1등으로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건 바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끝까지 완주하는 거야, 그게 마라톤에서 제일 중요해”
출발 순서는 하프 코스, 10킬로, 5킬로 순으로 시차를 두고 출발한다. 주위도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날 바람살살 불러오는 한강변의 날씨는 달리기하기에는 최상이다. 주위에는 가족, 연인, 동호회, 회사동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출발선에 서서 경쾌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다. 마라톤대회의 기분 좋은 풍경 중의 하나가 이 순간이다. 출발선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준비하면서 한 방향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멈추어 대기 중인데 멈춘 것 같지 않은 강한 역동이 느껴지는 이 자리에 아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분출된다.
이제 10킬로 종목 차례다. 다 함께 외치는 출발신호, 5, 4, 3, 2, 1 출발~
아들에게 아빠의 보폭에 맞추어 달리라 코칭한다. 출발 전에 수립한 나름 전략이다. 아빠의 속도와 보폭을 따라 오면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고. 아들에게 아빠는 일정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이리라.
경험상, 초반 1킬로는 넘치는 힘을 줄여 뛰는 게 관건이고 3~4킬로 지점에서 오는 첫 번째 고비, 5킬로쯤에 갈증에 급수대에서 물을 많이 먹게 되면 분명코 6킬로쯤에 왼쪽 또는 오른쪽 배가 아프게 되고, 7킬로까지는 잘 달리다가 8킬로쯤에 두 번째 고비 걷고 싶은 유혹을 잘 극복하면 골인 지점이 보이는 9킬로에서 10킬로까지는 그냥 내달릴 수 있다. 체격과 체력이 좋다 하나 실전에서는 평소 오래달리기는 하지 않았던 아들로서는 역시 힘에 겨워한다.
나는 뒤처지는 아들의 속도에 맞춰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러닝으로, 때론 뒤처진 달리기에 욕심으로 갑작스레 뛰어나가는 아들의 뒤를 따라가기도 하면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억제하는 속도로 달렸다. 달리면서 아들에게 재미를 유도하기도 하고 경사진 오르막을 오를 때는 경험을 전수했다. 보폭을 좁게 하면 힘이 덜 든다는 서툴지만 달리기 요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6킬로쯤에 많이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슬쩍 던져본다.
‘아들, 우리 힘든데 여기서 그만할까?“
“아니. 끝까지 갈 수 있어. 아빠 먼저가. 내가 뒤에 따라갈게”
“그럼 아빠 따라올래?”
그동안 나란히 비스듬히 반보 앞에서 달리던 주행에서 앞에 달려 나간다. 그러나 나의 눈은 앞을 보고 달리지만 신경은 뒤의 아들에게 온통 꽂혀있다. 너무 앞서 달려 나가면 따라오기 힘들 것이고 너무 천천히 달리면 마라톤에서 소화해야 할 도전을 못 하게 되니.
9킬로쯤 되니 아들이 힘이 다시 솟았나 보다.
“아빠, 이제 제가 앞에서 달릴게요”
그래라. 아들은 멀리 보이는 첫 출발 지점이 눈에 들어오자, 힘을 내어 달린다. 힘써 달리는 아들 뒤에서 달려가는 나는 흐뭇하다.
아들은 예상보다 기록을 5분이나 단축했다며 환호한다. 그리고 완주 메달을 자랑스럽게 목에 건다. 그날 밤 아들이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다.
“엄마, 아빠는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는데 나한테 맞추어 달린 것 같아”
“^^”
10킬로 달리기대회에서만이 아닌 삶에서도 부모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잘 수행하는 그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그 어느지점을 지나면 아이는 자신의 속도와 계획을 가지고 아빠에게 다시 제안하며 아빠를 끌어 당겨가며 달려가는 모습을 쳐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완주하는것, 자신만의 보폭과 전략에 맞추어 자신만의 마라톤레이스를 펼쳐내는것 그것이 페이스메이커인 부모의 역할중에 하나일 것이다. 대신 달려줄수 없는것이기에?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아이가 어릴 적 마라톤 때와는 또 다른 형태로 지금도 유효하다. 참 어렵다. 혼자 달리는 것도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올림픽이나 중요대회에서 달리는 실전 마라톤에서 우수한 페이스메이커에게 요구되는 몇 가지 자질들이 있다고 한다.
설정된 목표 시간에 도달하기 위한 정확한 페이스 감각, 당연하지만, 체력과 지구력과 마라톤의 경험, 많은 이들이 페이스메이커를 보고 달리기에 리더십도 필요하며, 달리는 중 힘들고 지친 주자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포기하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 멘탈을 케어해주는 심리적 지원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장의 변화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전략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다.
페이스메이커의 자질은 비단 마라톤에서만 요구되어짐이 아님을 절감한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한다.
필자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으로 오랫동안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직업정체성이 혁신가로 사회제도를 혁신함으로 누군가를 돕기도 하였다. 그중 또 다른 역할이 ‘페이스메이커’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 ‘누군가를 돕기 위한 제도와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복지사의 또 다른 부제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 사회복지사만 그러하겠는가?
■ 저자 소개
▷ 대표 이력 : 25년간 사회복지사로 민간, 공공, 행정기관에서 일함.
진심 담은 삶의 이야기 글쓰기 작가
▷ 대표작 :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저자
▷ 이메일 등 :
bibleprey@hanmail.net, https://www.facebook.com/bible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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